삶이 있는 이야기 3 "내 동생"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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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림지기 작성일18-10-02 14:01 조회1,937회 댓글0건본문
삶이 있는 이야기 3 "내 동생"
글쓴이: 이명옥 사회복지사
<진섭씨의 어린시절>
진섭씨에게는 두 살 아래 동생이 있다. 두 사람은 진섭씨가 4살 때 보육원에 들어갔다가 2년뒤 진섭씨가 장애진단을 받고 장애인거주시설로 가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은 부모님께서 방문하셔서 동생과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 부터는(기억을 못하지만) 부모님이 오시지 않게 되면서 동생과도 연락이 두절됐는데 14살 때 지금 살고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러다 진섭씨가 18살 되던 해에 동생이 인천의 ○○보육원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고 ○○보육원에 연락하여 동생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양쪽 기관에서는 1년에 두 번 정도(설, 추석) 진섭씨와 동생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진섭씨가 동생을 찾아갈 수 없기 때문에 늘 동생이 형을 찾아 왔다.
<동생의 졸업식>
2012년 2월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 했다. 진섭씨가 동생의 졸업을 축하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졸업식 며칠 전부터 졸업식에 갈 때 무엇을 준비할지 의논했다. 그리고 진섭씨와 함께 선물과 꽃다발을 준비하였다. 회사에는 직접 휴가를 내도록 하였다. 진섭씨 혼자 졸업식장을 찾아갈 수 없기에 같이 가기로 하고 진섭씨와 함께 학교를 찾아가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진섭씨는 글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설명을 하며 이해를 도왔다.
드디어 동생의 졸업식 날. 준비한 선물, 꽃다발을 들고 동생이 다니는 학교로 갔다. 같은 인천이지만 전철과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긴장이 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동생의 졸업식은 그동안 진섭씨가 보아온 특수학교 졸업식과 달리 졸업생과 축하하러 온 사람이 졸업식장을 꽉 메워 발 디딜 틈 없었다. 진섭씨는
“와~~ 사람이 진짜 많아요.”라며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내 동생이 되게 멋있어요.”라고 자랑스러워 하였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동생이 생활하는 보육원 직원과 만나 동생의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은 졸업하면 같이 졸업하는 3명의 친구와 함께 집을 얻어 살 거라고 했다. 동생이 전문대학교에 합격했는데, 4년제를 가기를 원하였고 실력도 되었으나 경제적 형편 때문에 전문대를 가게 되었단다
졸업식이 끝나고 동생과 함께 사진도 찍고 준비한 선물도 전해주고 맛있는 밥도 사주며 축하를 하였다. 동생을 처음 만나는 나는 동생이 혹시 불편해 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진섭씨 또한 동생 앞에서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고 두 형제는 말없이 밥만 먹고 헤어졌다.
동생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보육원 직원한테 들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설명하여 이해를 도왔다. 학교를 다니면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동생의 사정을 들은 진섭씨는 이제는 돈을 아껴서 사용하겠다고 하였으며 동생에게 축하를 하고 선물도 해줘서 뿌듯하다고 하였다.
<또 한 번의 이별>
고등학교를 졸업 한 동생이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을 한 후 동생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동생의 핸드폰은 꺼져있고 카톡메신저에서도 사라졌다. 이제나 저제나 동생의 연락을 기다리던 진섭씨는 7월 어느날
“동생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연락이 왜 안되요? 별일은 없겠죠? 동생을 만나고 싶어요”라며 걱정하였다.
“동생하고 연락이 안되면 보육원에 전화해 보겠어요?”
“못하겠어요. 전화 좀 해주세요.”
“진섭씨가 직접 해보는 것은 어때요? 전화 할 수 있잖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진섭씨의 부탁으로 보육원에 전화를 했다. 동생은 일이 있을 때만 보육원을 방문하고 있고 현재는 방학 중이라 용돈, 생활비를 벌어야하기 때문에 길게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전화 연락이 안된다고 하였다. 방문하게 되면 형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 달라고 하자 전달했다. 진섭씨에게 동생의 상황을 전하자 조금 안심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몇 달이 흘러도 연락이 없었다. 그러자 보육원에 직접 전화는 못하겠다고 하며 다시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화해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연습을 해 보았으나 못하겠다고 하여 결국 내가 다시 보육원에 전화를 하였다. 지난 번에 받았던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동생이 방문 했을 때 여러 사람이 형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연락을 하도록 하였으나, 형에 대한 애정이 없고 자립을 하며 생활하다보니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하며 미루는 것 같아요. 현재 동생은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동생이 형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형을 만나러 오는 것을 미룬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진섭씨는 매우 실망하며 알겠다고 하였다.
<동생에게서 온 전화>
2013년 2월 동생으로부터 사무실로 연락이 왔다. 1년 만이었다. 형의 전화번호가 바뀌었는지 물어보더니 형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진섭씨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진섭씨가 많이 걱정하고 궁금해 했다고 전하자 그렇냐고 하면서 조만간 한 번 만나러 오겠다고 하였다.
기쁜 소식을 1분이라도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진섭씨가 근무 중 쉬는 시간에 동생에게 연락이 왔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진섭씨는
“언제 연락이 왔어요? 잘 있대요?” 궁금한 것을 쏟아냈다. 동생이 다시 전화를 할 것이라고 전하였다. 퇴근 후
“동생이 전화했어요. 전화번호가 바뀌었어요. 며칠 있다가 온데요.”라고 하였다.
“너무 좋아요. 통장에서 돈을 빼서 용돈을 줘도 되요?” 라고 물어보았다. 진섭씨가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자 오만원 빼서 용돈을 주겠다고 하였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온 이후부터 만나기 전까지 동생과 하고 싶은 것을 계속 바꿔 이야기 하며 동생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동생과의 재회>
진섭씨의 생일은 2월 26일이고, 동생은 진섭씨 보다 10일 늦은 3월 7일이다. 진섭씨의 생일날 그렇게 기다리던 동생을 만났다. 동생을 만나러 가기 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자 PC방도 가고, 영화도 보고 싶다고 하였다. 동생이 불편해 할 것 같아 이번엔 직원은 같이 만나지 않기로 하였다. 잘 다녀 오라고 하자 웃으며 동생을 만나러 가는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였다.
3시간 후 돌아와서“저녁도 먹고 PC방에서 게임을 했어요. 그리고 동생이 생일선물로 빨간색운동화를 사줬어요. 사이즈도 맞고 색깔도 마음에 들어요.”라고 하며 흥분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평소 진섭씨가 잘 신지 않는 스타일의 운동화였는데 동생이 사준 것이어서 좋았던 모양이다. 동생의 생일엔 진섭씨가 운동화를 선물하겠다고 했다.
동생의 생일날 다시 만난 형제는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안되어서 헤어졌다. 운동화만 사주고 바로 헤어졌다고 하였다. 왜 이렇게 빨리 헤어졌는지 물으니 만나면 동생이 빨리 가려고 한다고 하며 서운해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이 진섭씨의 집에 놀러왔다. 다음날 아침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하며 나간 진섭씨가 점심도 먹지 않고 영화만 본 후 헤어져 돌아왔다. 동생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기분 나쁜 상태로 돌아갔다고 걱정했다. 진섭씨도 나도 동생이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알 수 없어답답 하였다. 그렇다고 동생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낮선 슬리퍼가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물으니 진섭씨가
“동생이 신고 왔다가 안가져 갔어요”
“그럼 동생은 뭐를 신고 갔어요?”
“지난 번 내 생일에 선물 한 운동화를 신고 갔어요. 저는 안 신으니까 동생 신으라고 줬어요.” “왜 안 신어요?”
“색이 마음에 안들어요.”라고 하였다. 선물을 받았을 때는 동생이 사준 것이니까 좋았는데 막상 신으려니 색도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 않더란다. 그런데 어제 동생이 영화를 본 후 기분이 좋지 않더니 팝콘을 먹어서 밥도 먹지 않겠다고 하였고, 용돈을 주었는데 어떻게 받냐고 하면서 받지 않았다고 했다. 동생이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생이 기분이 어땠을지 동생의 입장에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형 생일이라고 선물을 준비한 동생의 정성을 생각해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신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니면 신지 않더라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면 동생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라며 직원의 마음을 전하였다. 진섭씨는 동생을 자주 만나고 싶고 편하게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동생하고 어떻게 관계를 가져가야 할지 잘 모르고, 오랜 기간 떨어져 있던 동생은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 진섭씨에 대한 마음이 가족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는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동생 초대하기>
어떻게 하면 동생과 더 편안하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용자들과 의논하였다. 그래서 추석날 다 같이 동생을 초대하기로 하였다. 자립해서 혼자 명절을 보내야 할 테니 명절 음식을 만들어 같이 밥을 먹고, 우리가 매월 하는 볼링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진섭씨도 좋다고 하였다. 그동안 동생을 만나면 둘이 마주보고 소통하기보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대화가 필요 없는 것만 하였었다. 그러니 서로 마주보고 몸으로 부딪치며 할 수 있는 운동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음식을 준비하려니 동생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명절음식인 전, 잡채, 갈비를 만들고 진섭씨는 잘하는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만들기로 하였다. 다 같이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면서 진섭씨가
“동생이 좋아할까요?”
라며 걱정을 하였다. 모두들 맛있게 먹을 것이라고 격려하였다.
오전 내내 음식을 준비 해 놓고 동생을 기다렸다. 동생은 약속시간보다 2시간 늦게 왔다. 점심을 먹기로 하였는데 이른 저녁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동생이 맛있게 먹었다. 나는 형이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는지 동생에게 설명하였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볼링장으로 갔다. 볼링장은 명절이라 그럱 다른 때 보다 더 사람이 많았다. 기다리는 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30분 정도 지나자 레인을 배정 받았고 우리는 지는 사람이 음료수를 내기로 하였다. 파이팅을 외치고 게임이 시작되자 그동안의 어색함도 잠시 자연스럽게 승부욕이 생기면서 파이팅이 넘쳤다. 스트라이크가 나오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잘못해서 공이 빗나가면 격려나 장난도 치면서 서로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두 형제도 어색함을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볼링을 친 후에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였다. 진섭씨에게 동생이 너무 일찍 저녁을 먹어서 배가 고플 수 있으니 밥을 사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니 좋다고 하였다. 두 사람과 헤어진 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퇴근 후 진섭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이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진섭씨는
“내 동생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조금 더 가까워 진 것 같아요”라며 좋아하였다. 그리고 “내 동생이 내년 2월에 대학교를 졸업하는데 졸업하면 군대를 가야한대요.”라고 하며 서운해 하였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니 몸은 너무 힘들고 피곤했지만 두 형제가 한걸음 서로를 향해 다가선 것 같아서 뿌듯한 하루였다.
<용돈>
그동안 근무를 하며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던 진섭씨가 최저임금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동생이 생각이 났나보다.
“동생한테 용돈을 보내주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돼요?”
“왜 동생에게 용돈을 보내주고 싶어요?”
“내 동생이니까요.”
“단지 동생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거에요?”
“저는 일도 하고 여기서 편하게 생활하는데 동생은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힘들게 생활하고 있잖아요. 만나서 용돈을 주려고 하면 받지 않으니까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하면 좋겠어요.”
“자동이체를 해서 동생에게 보내려면 동생의 통장 사본이 있어야 해요.”
“동생한테 이야기 하면 싫다고 할 거에요. 용돈 주면 가만 안 있는 다고 했어요. 선생님이 대신 얘기 좀 해 주세요”
동생은 형도 힘들게 일하는데 형한테 용돈을 받으려니 미안해서 그렇게 이야기 한 것 같았다. 전화해서 애기하기 보다는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로 하였다.
송년회 때 동생이 오면 진섭씨가 이야기 하고 직원이 도움을 주겠다고 하자 알았다며 동생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송년회 날 용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섭씨가 동생 분한테 용돈을 주고 싶어해요.”
“그렇지 않아도 형이 이야기 했어요. 왜 그래요?”
“형이 자기는 일도 하고 편하게 잘 지내는데 동생 분은 혼자 아르바이트하며 생활을 하고 학교도 다니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어요. 그래서 용돈을 조금이라도 주고 싶다고 했어요.”
“그럼 형이 쓸 것이 없지 않아요?”라고 하였다. 자기 때문에 형이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될 까봐 걱정이 되었나 보다.
“형이 최근 최저 임금을 받게 되어서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통장 사본이 필요해요”
“그럼 통장 사본을 보낼께요. 형 고마워.”
동생이 용돈을 받겠다고 하자 동생에게 용돈을 보내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하였다. 어려운 동생을 위해 형 노릇 하는 진섭씨가 참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말에 우리끼리 하던 송년회를 이번에는 가족들을 초대해서 하기로 하였다. 추석에 진섭씨 동생을 초대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각자 가족을 초대해서 송년회를 하고 가족이 올 수 없는 사람은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초대하기로 하였다. 가족들에게는 각자 초대를 하기로 하였다. 우리 가족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송년회를 언제, 어디에서 할지 의논 하여 밖에서 식사를 하고 볼링을 치기로 하였다.
송년회 날 약속 시간에 모두 모였는데 진섭씨의 동생은 연락이 되지 않고 약속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왜 안오지?”식사하는 내내 편치 않았다. 사정이 있을 거라고 설명 했으나 서운함과 걱정하는 마음이 교차되어 안절부절 하였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게 되어 핸드폰을 꺼 놨었다고 하였다. 그러자 안심을 하며 표정이 밝아졌다. 이후 동생을 만나자 배가 고플 것이라고 하며 햄버거를 사서 볼링장으로 향했다.
동생과 볼링을 치는 동안 지난 번 보다 더 가까워 진 것이 눈에 보였다. 진섭씨가 동생이 군대 가기 전에 여행을 같이 가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 다 같이 여행을 가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내년 초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볼링을 친 후에는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헤어졌다.
밤 10시가 되어 진섭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과 둘이서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였다. 식사를 하며 술도 조금 마셨는데 술을 마시니까 동생이 말을 많이 한다고 하였다. 어렸을 때 헤어지게 된 이야기, 여자 친구 이야기. 동생이 군대 간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장난을 친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체험홈 가족들하고 같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가는 날짜에 맞춰 꼭 시간을 내겠다고 하였고. 나중에 돈을 벌면 둘이서만 여행을 가자고 했다고 하였다.
“야~ 오늘 동생이 너무 고마웠어요.”
“동생이 술을 많이 마셔서가 아니라 진섭씨가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라며 다시 한 번 너무 고맙다고 했다.
“진섭씨 기분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라고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도 왠지 오늘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좋고 동생이 와서 더 좋았어요.”
“저도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동생이 통장 사본을 보낸다고 했어요.”
15분 동안 전화통화를 끊지 않고 이어갔다. 진섭씨가 오늘처럼 들떠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감사하고 기분 좋은 하루였다.
<가족여행>
진섭씨가 원하는 대로 동생의 졸업 전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진섭씨와 동생, 나와 딸, 그리고 함께 생활하는 이용자들과 동생이 같이 가기로 하였다. 여행 날짜와 장소를 정하였다. 진섭씨가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고 하자 동생도 동의 하여 둘이 같이 번지점프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번지점프를 할 수 있는 강촌으로 여행 장소를 결정하고 강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레일바이크, 4륜 바이크가 있어서 타겠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것도 찾아보았다. 멋진 레스토랑도 가보기로 했다. 대중교통으로 가자니 원하는 곳을 다니기가 쉽지 않아서 같이 갈 수 있는 가족을 찾았다. 그래서 원장님 가족을 초대하기로 하고 이용자들이 직접 초대를 했다. 원장님은 흔쾌히 동행하시겠다고 했다. 여행을 가족들과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모두 다른 여행보다 더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가족들에게는 각자 날짜와 장소를 전하기로 하고 당일 가족들과 만나 예림원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출발 전날 진섭씨 동생이 체험홈에 왔다. 당일에 혼자 있으면 시간 맞춰 올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진섭씨는 동생이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자 밥을 차려주고 같이 먹었다. 다음날 모두 늦지 않게 예림원에 도착하였다. 강촌으로 가는 차 안은 아직은 어색함이 있는지 조용하였다. 강촌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번지점프를 하였다. 두 형제는 긴장이 되는지 서로 먼저 뛰라고 하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여느 형제와 다름없이 정겨워 보였다. 다른 가족들은 두 형제가 뛸 수 있도록 응원을 했다. 안전수칙을 잘 들은 후 동생이 먼저 준비를 하였다.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진섭씨는 아무 말도 없었다. 진섭씨의 차례가 되자 동생이 다가가
“괜찮아 형.”하며 격려했다. 그렇게 형제는 용감하게 나란히 번지점프에 성공 했다. 다음으로 4륜바이크를 타는 곳으로 갔다. 4륜 바이크를 타기 에 앞서 안전수칙을 들었다. 정해진 곳에서만 타라고 하였다. 그런데 형제는 속도를 내어 경쟁하듯이 다른 사람들 앞서 달리다가 둘이 같이 들어가지 말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후 정해진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돌아왔다. 레일바이크를 타면서 두 형제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함께 탄 다른 가족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셀카를 찍는 것을 보며 이제는 정말 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는 아침의 어색함이 무색하게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진섭씨는 이 여행이 부모, 이모, 형제들이 여행 온 것 같았고, 동생과도 많은 이야기를 하며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하였다.
여행 이후 형제는 여느 형제 못지않은 관계가 되었다. 진섭씨는 매월 동생에게 50,000원씩 용돈을 보내주었다. 용돈은 동생이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식 취업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동생의 대학 졸업선물로 멋진 옷도 사주었다. 동생이 친구들과 완전히 떨어져 혼자 살게 되었다고 하자 선물을 해주고 싶어 했다. 동생은 더 이상 형한테 받기만 할 수 없다며 거절하였으나 진섭씨는 동생이 좋다고 하는 것을 기억했다가 선물로 보내주었다. 자주 만나 식사도 하였다. 이제 둘 사이에는 더 이상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동생의 취업>
2015년 1월 설날 체험홈에서 설 음식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회사에 취업을 하여 며칠 뒤부터 연수를 받는다고 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회사였다. 합격통지를 받고 기뻐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동생은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기에 취업 소식은 정말 기뻤다. 취업한 것도 좋지만 취업통지서를 받고 바로 형한테 전화해준 것이 더 기뻤다. 이제 더 이상 부담스러운 장애인 형이 아니었다.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형이었다.
첫 월급을 받고 동생은 진섭씨에게 지갑을 선물하였다. 유명하고 비싼 지갑이었는데 본인 것과 같은 커플 지갑이었다. 동생이 선물한 지갑을 잘 가지고 다니도록 당부하였다. 동생도 형이 지갑을 잘 가지고 다니는지 가끔 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이후에도 동생은 형과 커플 신발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가끔은 나도 같이 만나고 싶다고 하여 이제는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가까운 지인으로 만난다. 동생이 진섭씨하고 이야기 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하여 물어본다. 동생은 진섭씨의 의견을 매우 존중한다. 한번은 동생이 부모를 찾고 싶어졌는데 진섭씨가 반대를 하였다. 그랬더니 형이 찾고 싶어질 때가지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진섭씨와 동생은 주변에서 모든 이용자들이 부러워하는 관계가 되었다.
<새로운 시작>
몇 년 동안 체험홈에서 살면서도 예림원이 전부였고, 그래서 자립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진섭씨는 올해 초 자립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자립을 하면 어디서 살고 싶어요?”
“동생집 근처에서 살고 싶어요. 내 동생한테도 얘기 했는데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자립을 위해 주택 신청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동생이 전화를 하여 형하고 같이 만나자고 하였다.
무슨일일까 걱정이 되었다. 며칠 전 새벽에 전화를 했는데 받지 못했다고 하며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형과 나를 만나 식사를 하고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면서
“형 아직 자립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
“응”
그리고 나를 향해
“제가 내년에 외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 전에 형하고 3개월 정도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형이 괜찮으면 제가 돌아올 때 까지 그 집에서 형이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떨까요? 그 집은 임대주택이어서 임대료도 저렴해서 형이 살기 좋을 것 같아요. 형이 임대료를 내기 어려우면 제가 일 년 치 남겨 두고 가면 돼요”
“누구보다 진섭씨의 생각이 중요해요. 진섭씨가 좋다고 하면 괜찮아요.”
“형은 어때?”
“나야 좋지. 언제 오는데?”
“1년 동안 있다가 오는 거야. 나와서 같이 살자”
동생은 떠나기 전 형과 함께 살면서 자신이 없어도 형이 혼자 잘 살 수 있도록 미리준비를 하고 싶은 것 같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도 따뜻했다.
동생과 헤어진 진섭씨는 너무 좋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 하였다.
진섭씨는 동생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좋아하는 마술쇼도 보고, 둘이 여행도 가고. 동생이 키우는 고양이도 잘 돌봐줄 것이라고 한다.
부모 없이 살아가는 동생에게 어쩌면 지적장애인 형은 아주 부담스러운 존재였는지 모른다. 그런 형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고(아니. 어쩌면 지금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일지 모르겠다.) 가족으로 받아드리고 자립을 돕기 까지 7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형이 형 노릇 하게 돕는 것, 서로 의지하며 가족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도록 돕는 것. 그것이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진섭씨는 동생을 이야기 할 때 늘 ‘내 동생’이라고 한다. 예림원이 세상의 전부였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생각했던 진섭씨를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준 동생. 진섭시가 말하는 내 동생.
세상 밖에서 함께 할 두 형제의 앞날을 앞으로도 열심히 응원하며 지켜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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