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는 이야기5 "투석! 함께 배우다" - 김종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림지기 작성일18-10-02 14:10 조회2,068회 댓글0건본문
•함께 배우다.
거주시설 근무 6개월 차, 업무 적응을 할 시간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진행되던 많은 행사, 대학교 전공시간에도 다른 직장생활에서도 배운 적 없던 문서들에 퇴근 후에도 컴퓨터를 켜는 것이 당연하게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팀장님이 17년 3월 25일 함께 생활하던 이용자가 전원을 가니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전원이라는 단어도 생소했지만, 필요한 서류는 더욱 어려웠다. 그렇게 담당 이용자 4명 중에 1명을 전원을 갔고, 이미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용자를 빼면 2명에게 서비스지원이 하고 있었다.
17년 3월 30일 팀장님이 공동가정에서 생활하던 영기씨가 신부전증으로 직장생활이 어려워 17년 4월 1일에 저희 실로 전원을 할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다른 직원들은 영기씨를 알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나 역시 “신부전증으로 직장생활이 어렵다.”라는 말에 안타까움을 가졌다.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종민 선생이 담당하면 되요.”라는 말에 안타까움은 걱정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영기씨에 대한 마음보다 나 스스로에 대한 걱정스러움이었는지 모른다.
17년 4월 1일 근무를 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영기씨 왔으니 내려오세요.” 빠르게 내려갔다. 영기씨에게 인사는 했지만, 눈은 동행한 직원에게로 향했다. 그것도 아니고 가지고 왔을 많은 정보들이 궁금했다. 신부전증이 뭔지 어떤 것이기에 직장생활도 하지 못하는지가 궁금했다. 짧은 인수인계 후에 서류들과 영기씨의 짐을 정리했다. 짐 정리가 끝나고 영기씨와 짧은 대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영기씨를 지원할 직원 김종민이라고 해요. “네”, “박영기이요.” 웃으면 인사를 해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밝은 모습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받은 서류들을 펼쳤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서비스계획이나 intake 서류가 아닌 12월부터의 의료기록과 신부전식(저염식)에 대한 자료뿐 이였다.
영기씨에 이야기이다. 영기씨는 다운증후군으로 예림원에서 거주하다가 공동가정생활로 자립하여 생활하던 중 조기노화로 신장이 줄어들어, 16년 12월 30일 단백뇨 증세가 발견되고, 다음해 1월 재검사에는 만성신부전증 의심으로 내과에서 대학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1월 13일에 시작된 검사에 답은 23일에 투석을 진행해야한다는 답으로 나왔다. 오랜 검사에 출근하던 직장에 오랫동안 출근하지 못한 다는 말을 전했다. 직장에서는 1월 16일날 다시 출근하라고 했지만, 16일이 지나고, 20일이 지나면서 직장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을 일이다. 결과와 함께 투석을 위해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동정맥류시술과 오줌배출과 방광세정을 위해 허벅지에 카테테르가 몸에 박혔다. 입원하여 진행된 2박 3일 동안 가족의 간병에 영기씨는 즐거워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든 3개월을 보내고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4월 5일 서로가 처음인 투석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투석을 시작하다.
도착 한 투석병동에 풍경은 낯설었다. 신부전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고 투석을 받는 것이 특이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자리에 누워서 혈압체크를 하고 투석을 위해 간호사가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동정맥루시술을 했지만 아직 혈관이 자라지 않아 여러 번 바늘을 찔렀다. 다운증후군의 특성 때문인지 표정이 더욱 아파보였다. 드디어 바늘을 찔러 넣고 투석이 시작됐다. 투석이 시작되니 간호사는 아무렇지 않게 4시간 뒤에 끝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번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투석의 시작과 함께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물은 하루에 한 통, 소금은 매우 조금 먹어야 했다. 어차피 토마토, 과일, 견과류는 먹지 말라 하기 전부터 공동가정생활에 챙겨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시설에서 생활을 하니 식단을 조절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식당에서 해주었다. 하지만, 조절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은 달랐다. 맛없는 음식에 체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음식을 먹지 않아 간식을 조금 먹으면 인수치가 널뛰기를 하여 병원에서 한 소리 듣기 일 수 이였다. 그러던 5월 일이 터졌다. 투석을 마치고 돌아와 잠을 자던 중에 시술한 팔이 부어오르고, 변기를 부여잡고 토를 했고 직원이 들어가니 5초간 화장실에 쓰러져 기절을 했다. 응급실에 가보니 저혈압과 체력문제였다. 원래 투석이 끝나면 영양분도 함께 빠져나가기 때문에 영양식을 먹어야하는데, 조절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투석환자 주변사람은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담당직원이 몰라서 영기씨를 아프게 할 수 없어, 병원을 갈 때마다 많이 질문 하고 배웠다.
•투석은 어렵지 않다.
투석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신부전증의 진행순서는 투석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었다. 주1회롤 진행하던 투석을 2회로 바뀌고 익숙해졌다. 하지만, 3개월간 허벅지에 있는 카테테르 때문에 씻지 못하는 것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6월 여름이 다가올 쯤 카테테르 제거시술을 하자는 소식이 전해왔다. 시술 후 2주가 지나고 영기씨가 나에게 먼저 말을 했다. “목욕탕가고 싶어요.” 만난 후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바로 팀장님에게 달려가 “영기씨랑 목욕탕 다녀오겠습니다.”예림원 모든 직원이 환호했다. 목욕탕에 도착해서 세신사(목욕관리사)에게 몸을 맡겼다. 함께 목욕탕을 다녀오니 훨씬 가까워졌다.
•안정기
투석이 주2회로 진행되고 카테테르까지 제거하니 일상이 편해졌다. 투석 전날은 함께 외식을 하고 카페를 갔다. 한 달에 한 번씩 산과 바다로 나들이를 했다. 모든 것이 익숙해지니 다 좋아지는 듯 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주민센터에 프로그램을 참여하여 운동도 했다. 투석환자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즐거워하는 것과 달리 체력은 점점 나빠졌다. 1시간을 하던 운동은 조금만 해도 지쳤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 또 다시 위기
병원에서 영기씨의 체중이 많이 줄어서 투석 때 힘들어한다는 말이 전해왔다. 그렇게 생각이 많던 밤 영기씨가 가슴통증을 호소했다.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서 많은 검사가 진행되었다. 일반인과 달리 투석환자는 주치의 처방없이 응급실 퇴원이 힘들었다. 통증의 원인은 역시 체력이었다. 체력이라는 것이 결국 체중이었다. 44kg으로 시작했던 투석의 현제 상황을 37kg이였다. 병원에 말을 했다. 저염식을 하면 식사를 하니 식사량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니 투석환자 중에 완전한 저염식을 하는 환자는 영기씨 밖에 없다고 전해 들었다. 새로운 지원이 필요했다.
• 잘 먹어보자
병원에서 일반식으로 한 달 진행 후에 피검사를 해서 차이가 없으면 저염식을 중단하자고 했다. 일반식으로 변한 후에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지원된 저염식에 예림원 식당에서 먹는 밥은 맛있었다는 생각이 생긴 듯 했다. 방법이 필요했다.
영기씨는 가끔 본죽에서 사오는 죽을 좋아했다. 본죽 포장용기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포장용기에 식당음식을 담아서 주니 조금씩 식사량이 늘었다. 영기씨가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식판에 음식 먹고 싶어요. 음식이 맛이 바뀐 것을 느끼니 남들과 같아지고 싶은 듯했다. 한 달이 지나고 저염식은 중단되었다.
• 아직도
투석을 하지 않아도 체중이 유지되어야 투석이 끝난다고 한다. 그렇게 되는 것이 모두에 바램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영기씨가 자신에 삶을 사는 것이다. 투석이 진행되면서 체력도 점점 줄어들 것이고, 결국 횟수도 주2회에서 3회로 변경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 시기가 늦어지길 바라며 하루를 살아간다.
• 비밀의 열쇠 “소통”
투석을 한 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진행을 하니 음식에 대한 부분이 조금은 편해 졌다. 병원에서 살이 빠진다고 하여 간호사에게 먹을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니, 조절을 해도 가끔은 편하게 먹는 날도 필요하다는 말이 있어서 외식을 지원하였고, 7월 10일 허벅지에 시술 했던 도관을 제거하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영기씨가 다가와서 목욕탕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목욕탕을 다녀오니 다음 날 핸드폰을 가지고 와서 영화 예고편을 보여주며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고 오니 다음 날에 몰래 쓰레기통에 과자껍질을 버리다가 눈이 마주쳤지만 모르는 척했다. 몸이 많이 편해진 것 같다. 아직도 12시가 지나면 전화가 온다. 아직도 전화를 받으면 영기씨는 “끝났어요.”라고 이야기한다. 병원 마중을 가서 얼굴을 보니 웃으면서 지혈된 팔을 보여주고“이제 괜찮아요.”라고 말을 한다. 간식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계획 없이 나가서 먹을 것을 찾아보는 날이 많아지고 대화는 길어졌다. 올리브 하우스보다 예림원이 넓어서 좋다고 이야기를 해줘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자친구가 줬다고 편지도 보여줘서 데이트도 할 수 있었다. 대화가 많아지니 할 일이 많아졌고 할 일이 많아지니 투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초점이 투석에서 일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투석은 어때요??”, “해야되요.”
미세먼지가 많다고 호흡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마스크를 쓰던, 물을 많이 마시던 대안을 찾는다. 영기씨에게 투석역시 그렇다. 투석을 한다고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대안을 찾고 삶을 살아갈 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가기 두려워하는 직원에게 먼저 목욕탕을 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던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누구도 누구를 관리할 수는 없음을, 다만 자신의 마음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영기씨의 삶이 투석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