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는 이야기7 "이루지 못한 꿈도 아름다워" -조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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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림지기 작성일18-10-02 14:20 조회1,978회 댓글0건본문
[가 족]
2년 전 수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와 오빠 모두 장애를 가졌고, 술과 폭력을 일상처럼 행하던 아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나를 밝게 반겨주며 기대에 찬 얼굴을 하던 수미.
“수미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하고 생각하다 물어보았다.
“선생님 전 가족이 없는 지금이 훨씬 좋아요”라고 한다.
수미야 가족이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거야
힘든 생활을 할지라도 미워할 수 없는 게 가족이야 그리고 지금 이곳 생활을 같이하고 있는 선생님과 동료들도 새로운 가족이야
“네 선생님”하고 고개를 숙인 수미에게 내가 따뜻한 가족이 되어 줄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해본다
[내가 사는 집]
수미는 자주 몸이 아파서 집에 쉬곤 했다. 어느 날은 회사를 가지 않는 날도 생겨서 걱정이 되었다. 수미는 아직 나이가 20대 중반인데도 복용하고 있는 약의 종류가 많고 당뇨도 앓고 있다. 때문에 칼로리 계산법을 이용해 체중 관리 및 식단 조절 중에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과연 수미가 견뎌낼 수 있을 걱정이 앞섰지만 밝고 씩씩한 아이다 보니 곧잘 따라왔다.
어느 날 휴무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수미한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반찬거리 사러 마트 왔는데요, 혹시...순대 좀 사먹어도 되요?”라고 전화가 왔다.
나는 평소에도 자주 이런 질문들을 했기에 자연스레 “응 그래, 사먹어~ 집에 있는 동료들도 좀 사다주고!” 라며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치고 나서 얼마 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괜찮은 일인지 직접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 것이 기특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다 자란 수미를 장애라는 구실로 너무 통제한건 아닌가...’ 싶었다. 내가 다시 수미에게 전화해서 “그렇게 사소한 일들은 수미가 판단해서 하고 나중에 얘기해도 될 것 같아” 하였더니 수미는 이런 것도 직접 물어보는 편이 자기가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수미가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기 보다는 최소한의 도움으로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아이가 되길 원했다. “수미야, 선생님은 앞으로 언젠가는 너 가 여기 시설을 나가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렇게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무작정 구하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해서 할 일과 사회에서 너의 역할,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낼 줄 알아야 해.” 라며 수미에게 긴 얘기를 해주었다. 잔소리 같은 나의 말에 시큰둥해질 법 했지만 수미는 “네 가르쳐주세요!” 라며 긍정적으로 대답해주었다. 수미의 마음에 고마움의 미소가 지어졌다.
[해보고 싶은 일이...]
어느 날은 수미가 직장에서 돌아오더니 “선생님 저 일하러 다니기가 싫어요” 했다. 직장에서 원장님이 자기한테 대화도 안하고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구내식당 밥도 맛이 없어서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힘들어하는 수미의 모습에 무턱대고 “왜 일을 안가냐”며 혼을 낼 순 없었다. 그래서 “수미가 먼저 원장님과 대화기회도 만들고 식비도 아껴 저축할 수 있도록 하자. 저축한 돈으로 나중에 원장님과 같이 도시락 먹으면서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네!” 했더니 항상 그렇듯 웃으며 “네, 선생님” 했다. 수미는 다음날부터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 후 수미가 일터에서 돌아와 드디어 원장님과 대화도 하고 도시락도 맛있게 먹었다며 활짝 웃었다.
그 후, 별 탈 없이 직장을 잘 다니던 수미가 얼마 뒤 전화로 투정을 부렸다. 직장에서의 일이 또 하기 싫다했다. 걱정이 되어 영문을 물어보니, 전부터 바리스타가 너무 멋있었고, 그래서 자기도 바리스타를 하고 싶어서 학원을 다니겠단다. 처음에는 놀랐다. 수미가 처음으로 나에게 적극적으로 무엇인가 하고 싶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매우 긍정적인 이 일은 나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즉각 들었다. “수미야 참 좋은 생각인데?”하며 약 한 시간동안 수미랑 이 꿈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단순히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닌 언젠가부터 동경하던 직업이었고, 최근에 와서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생각하자고 말하면서 원장님한테도 얘기하고 날짜를 잡아서 알아보자고 했다. “네 선생님” 하고 나는 출근을 했다.
[이루지 못한 꿈도 아름다워...]
그렇게 학원을 알아보고 바리스타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에 나간 지 3일째 되던 날 수미는 학원에서 뾰루퉁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유인 즉 슨 학원이 자기 스타일과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미가 꿈을 쉽게 포기하는 느낌이 들어 아쉬워 “드디어 너 가 하고 싶었던 걸 하게 되었는데 포기하면 아깝잖니” 라며 말을 하였다. 수미의 꿈과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 후 수미는 학원을 그만 두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사회적 기업에서 카페 서빙 일 하는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바로 수미를 추천했고 좋은 결과가 생기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수미와 면접을 보러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대본도 준비했고 열심히 연습한 만큼 자신감도 넘쳤다. 하지만 면접을 보고 나온 수미는 시무룩해보였다.
나를 보며 수미는 “선생님 저는 제가 많은 사람들과 부딪쳐서 하는 일은 저한테 안 맞아요. 많은 사람들과 적응을 잘 못하겠어요... 그냥 지금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모아서 자립할게요.”
가슴이 시려왔다. 학교에서 탈락한 요인을 들어보니 우울증도 있고 당뇨약과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나이도 많아서 거절당했다고 한다. 수미에게 위로의 말이 필요했다. “수미야,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패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수미도 이번에는 아쉽게 안됐지만, 학원에서 하던 것처럼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수미의 꿈도 이루어질거야.” 수미는 “낯선 사람과 면접을 보는 게 사실 힘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 바리스타 일이 좋아요.”라고 했다.
얼마 뒤 회사에서 좋은 기회가 생겼다. 취미로 바리스타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추천 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이 아닌 취미로, 그것도 낯선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는 커피숍의 바리스타보다는 바리스타를 하면서도 사람을 마주하는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으니 더욱 재밌지 않을 것 같아 추천을 하였다.
지금도 수미는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앞치마를 매고 커피를 만들고 있다. 꿈은 반드시 이뤄야만 아름다운 것일까? 이뤄지지 않는 꿈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수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비록 바리스타가 되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자기만의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꿈을 계속 쫓았고, 지금은 이렇게 멋진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만약 수미가 꿈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다면 평생 마음속에 후회가 겹겹이 쌓였을 것이다. 지금도 미련 없이 꿈을 향해 실패해보면서 다음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는 수미가 대견스럽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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